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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광고]안동의 문화유산 - 동산문화재
2020/05/06 16:5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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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국보 제16호(1962.12.20 지정)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제16호).jpg
 

전탑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칠층전탑으로 높이는 17m, 기단부 7.5m이다. 이 일대의 지명을 법흥리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에 세워진 전탑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탑 주위에 민가와 철도가 들어서 있어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이 탑은 1487년(성종 18)에 개축된 바 있다. 탑은 1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차곡히 쌓여져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과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고, 기단 남쪽 면에 설치된 계단은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고 있다.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 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 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부중상이나 사천왕상들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서로 제작연대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배치순서도 무질서하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놓아 아쉬움이 남는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을 길이 약 28cm, 너비 약 14cm, 두께 약 6cm의 진회색의 무늬없는 전돌로 어긋나게 쌓았다. 초층옥신은 매우 높고 남면 중앙 하반부에 화강석으로 테를 둘러 작은 감실(龕室)을 개설하였다. 내부는 위를 방추형으로 줄여 1면 48cm의 방형 구멍이 정상에 나 있어 찰주공(擦柱孔)으로 보인다. 2층 옥신은 초층옥신의 높이에 비하여 약 4분의 1로 높이가 급격히 줄었을 뿐 3층 이상의 체감률은 심하지 않아 7층이라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전탑 특유의 형태로서 처마 상하에 층단이 나타나며 처마는 수평이고 각 층 옥개의 너비는 석탑에 비하여 현저히 감축되었다. 밑의 받침 수는 초층부터 9단·8단·7단·6단·5단·3단이고, 옥개 상면의 층단 수는 초층부터 12단·10 단· 9단·8단·7단·6단·5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차츰 체감되었다. 현재 낙수면에는 극히 일부에 기와를 입혔을 것으로 보이며 전탑에 앞서 목탑이 존재하였고 전 탑은 목탑을 모방한 것임을 보여준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으나 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부 동오이(府東五里)”에 있다는 ‘법흥사전탑(法興寺塼塔)’이 이 전탑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법흥사전탑에 관하여 “상유금동지식이고철면납관주성객사소용집물(上有金銅之飾 李股撤面納官鑄成客舍所用什物)”이라는 기록이 있어 원래는 금동 상륜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은 경북 안동시 운흥동 231에 있는 남북국 시대의 오층 전탑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보물 제56호).jpg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높이 8.35m의 이 전탑은 안동역 광장 왼쪽의 건물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받침돌은 후대에 고쳐 상당히 변형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것은 높이가 약 42㎝로, 화강암을 3단으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탑신부(塔身部)는 가로 27.5㎝, 세로 12.5㎝, 두께 6㎝ 크기의 무늬가 없는 벽돌을 사용하여 조성하였다.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없으며 각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면의 감실에는 이례적으로 인왕상(仁王像) 2구를 조각한 화강암 널돌이 끼워져 있다.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8단·6단·4단·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는데, 머리 장식으로 연꽃이 조각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전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동국여지승람』이나『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법림사(法林寺)의 전탑으로 추정된다.『영가지』에 법림사전탑이 7층이라는 점, 조선시대에 크게 보수를 하였다는 점, 탑의 머리장식은 법흥사탑(法興寺塔)과 같이 금동제였으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 갔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 일대에는 현재 많은 전탑이 남아 있는데, 기록에 보이는 전탑을 포함하면 대체로 10여 기에 달한다. 이것은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또한 이것은 안동 주변 지역에서 모전석탑(模塼石塔)이 다수 건립되었던 것과도 관련된다.

   


안동이천동마애불입상

 

보물 115호로 1963년 1월 21일 지정됐다. 높이 12.38m. 거대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별개의 돌로 환조(丸彫 : 한 덩어리의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내는 기법)하여 올려놓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이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5호).jpg
 

몸체는 넓은 천연암벽에 새기고,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머리의 뒤쪽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완전하며, 육계가 높고 소발이며, 얼굴형은 갸름하다.

 

머리의 뒷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육계(肉髻)가 큼직하며 얼굴은 눈·코·입의 조각 수법이 크고 풍만한 편이다. 붉게 채색된 도톰한 입술은 굳게 다물어 강한 윤곽으로 표현된 얼굴과 함께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각선(刻線)이 예리하면서도 딱딱한 느낌을 주어 자비로운 인상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크기 때문에 위압감을 자아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목걸이 같은 것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환조의 머리 부분과는 달리 신체는 천연 암석에 단순하게 선조(線彫)로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왼쪽 어깨에서 길게 내려오는 몇 개의 옷주름이 오른쪽에서 직선으로 흘러내린 법의 자락과 교차되어 접혀 있다. 거의 노출된 가슴 밑으로는 내의(內衣) 자락이 수평으로 표현되어 있다. 얼굴 모습의 인상이나 옷주름 등으로 보아 조성 시기는 1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양손은 얕은 부조(浮彫)로 조각되었고, 오른손은 배에 대고 왼손은 가슴 위에서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댄 아미타불의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취하고 있다. 불상의 발밑에는 음각으로 표현된 큼직한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 대좌가 있다

 

이 거대한 불상 가까이에 석탑 1기가 있으며, 이곳에 원래 연미사(燕尾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위치하며 근래에 제비원이라는 암자가 새로 들어서 일명 '제비원 석불'이라고도 불리는 마애석불이다.

 

연미사는 경북 안동시 오도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한국의 정신적인 문화의 고향인 안동은 예부터 유교적인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왔다. 그러나 안동은 이전부터 불교문화가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연미사는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燕口寺)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燕子樓)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燕尾寺),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구사라 불렀다.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安東 平和洞 三層石塔)은 경상북도 안동시 평화동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보물 제114호).jpg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기단(基壇)을 위·아래 2단으로 꾸민 3층 석탑의 모습으로 신라 전형양식에 속하나 갑석의 기울기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한 점, 기단부의 결구법과 구성방식이 특이한 점에서 지방화된 석탑양식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아래층 기단에 아름다운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윗층 기단은 윗면에서 상당한 경사를 보이고 각 모서리도 약간 위로 치켜 올려진 전혀 새로운 형식을 갖추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붕돌로 보일 정도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은 처마밑이 직선이며,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들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석탑이 위치한 곳은 오래전부터 민가가 밀집되어 있어 사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구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의 위치도 일제강점기에 철도관사를 건립하면서 원 위치에서 약 50m 정도 이동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해당 석탑이 위치한 사찰의 범위나 방향, 배치 등은 전혀 알 수 없고 다만 목이 없어진 석불이 남아있다. 석불은 좌상으로 통견의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이 불상은 원래부터 이 탑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탑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곳을 『영가지(永嘉誌)』권6, 고적조(古蹟條)에 등장하는 부천사(富泉寺)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화동 석탑에서 동북쪽으로 약 450m 지점 있는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8호)과 안동 안기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8호)이 옛 안기역 앞에 있어 지형적으로 통한다. 특히 현재 층수는 3층이지만 초층탑신에 감실이 마련된 안기동 삼층석탑은 불상을 안에 모셨다는 『영가지』의 기록과 부합하는 면이 있어 이곳이 원래 부천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평화동 삼층석탑이 위치한 곳의 절 이름을 알기 어렵다.

 

석탑의 기단은 상·하 이중기단으로 면석의 구성이 일관성이 없으며 부재의 크기도 제각각 달라 후대에 수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노반과 복발은 각각 따로 제작되었는데, 노반은 방형 육면체로 상단부에 1단의 돌림띠가 있다. 복발은 납작한 편구형으로 돌림띠 장식은 없고 중판 4엽의 연화문이 복련으로 처리되었다. 노반이나 복발의 찰주공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탑을 구성하는 부재의 숫자와 조합을 살펴보면, 탑신부에 있어서는 탑신과 옥개가 각각 1매씩의 통일성을 보이고 있으나 상하층 기단부에 쓰인 부재의 형태, 숫자, 조합방식은 일반적 신라석탑의 구성요소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변화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데, 우선 하층기단 갑석의 형태와 상층갑석의 과장된 기울기와 합각에서의 솟음 기법이 주목된다. 또한 탑신부에 있어서도 옥개석 상단의 탑신받침이 1단으로 축소되었고 3층 옥개상면에는 노반받침이 사라지는 등의 간략화가 나타나고 있다. 탑의 비례적 측면에서는 초층탑신의 너비에 비해 높이를 낮추고 옥개석을 넓게 설정함으로써 가벼운 상승감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이 석탑에서 나타나는 전체적인 표현의지는 전형양식의 구현에서 벗어난 부분적 기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느낌이다. 비록 상하층 기단에 2:2의 탱주가 나타나지만 하층기단 갑석의 변형과 하층기단면석에 등장하는 안상의 부조는 9세기 이후 나타나는 신라석탑의 주요한 의장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조형기법과 세부의장을 조합해보면 9세기 중반경의 탑으로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안동시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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